미주복음방송 Gospel Broadcasting Company




   

미주복음방송 바로듣기

Play 를 눌러주시면 바로 청취하실수 있습니다.

GBC Mobile App 설치

GBC Mobile App for iOS

 GBC Mobile App for Android

 App Store GBC Mobile Download Link

Google Play Store Download Link 





프란시스코 교황 방문이 준 도전

2014.08.18 09:08

juan 조회 수:1830

프란시스코 교황이 마침내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온 나라가 한 주간 몸살을 앓았다고 한 언론이 표현했을 만큼 교황 방문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제가 선교사로 섬겼던 아르헨티나 출신이라 그런지 제 개인적으로는 더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한국 방문중에 보여 주었던 교황의 상징적인 행동이나 제스추어 보다는 그가 여러 집회에서 행한 강론과 연설의 내용에 저으기 놀랐습니다. 내용이 다 성경적이고 현실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정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금번 교황의 한국 방문은 카톨릭교회가 안고 있는 비성경적인 전통들과 신학적인 이슈들은 접고라도, 일반 국민에게는 카톨릭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쏟아내는 교황 방문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우리 개신교회가 놓치고 있었던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2천년 전 초대교회는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처럼 되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개신교회 안에도 아름다운 선행과 세상에 본이 되는 사역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의 내부적인 갈등만 언론을 통해 회자되면서 한국사회는 개신교에 등을 돌리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사회통념의 잣대로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를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세상이 고운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 보지 않는 것은 무언가 우리 교회가 본질을 놓치고 있음으로 생겨난 결과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 교회가 놓치고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교회가 교회 안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고 있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향해 다하지 못한 사명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들어 보라면, 그것은 개인주의와 파당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가진 것을 유무상통하는 인류 초유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 일어났던 첫번째 문제는 아나니아 부부와 같은 개인주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두번째 생겨난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히브리파와 헬라파 과부의 구제문제로 원망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분당은 공동체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제사장의 허다한 무리까지 하나님께 돌아오는 부흥을 계속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개인주의와 파당을 짓는 이 두가지 문제는 항상 교회 안에서 다루어져야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시작하면서 바울이 1장부터 인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언급했던 문제가 교회 안에 있었던 파벌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심각하게 다루었던 이 문제는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문제로서 오늘 우리 교회안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교회가 해결하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순전하고, 공동체로서 성도사이의 관계가 사랑으로 하나됨을 이룰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해 사명을 다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이 문제를 지역적으로 확대해 본다면, 개교회주의와 교단분열의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개교회주의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커뮤니티의 어렵고 약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진정성이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나, 아나니아 부부와 같이 전시성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저는 신문지상에 장학생 선발 광고나 단기선교나 선교후원 기사들이 앞다투어 날 때마다 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적은 장학금이라도 해마다 지역의 가까운 공립학교에 위탁해서 정말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면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교회는 사회의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믿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약한 사람을 돕는 사역은 교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분부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을 주실 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가난한 과부를 돌보고, 기근을 당한 형제들에게 연보를 거두어 구제한 것은 교회가 그러한 사역을 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교회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사역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마지막으로 한 부탁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0장 33절에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3차 선교사역을 마친 바울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방인 교회들이 힘을 모아 유대의 기근을 당한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과 함께 했던 일행 가운데는 적어도 일곱명이 넘는 아시아와 마게도냐 이방인교회의 대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의 교회에 전달할 이방인교회들이 모은 거액의 연보를 지참하고 있었습니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구제와 아직도 복음을 받지 못한 민족들을 위한 선교가 교회가 연합하여 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교회가 연합하여 이 본질적인 사역을 감당할 때 세상은 감동하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신학적인 문제로 교단이 분립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신교 인구의  75%가 되는 한국 장로교 교단의 수가 250개가 넘는다고 하는 오늘의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가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복음방송을 통해 가끔 방송되는 찬양이 있습니다.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되리'라는 찬양입니다. 오늘 아침 어둡고 비판적인 말씀을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 자신부터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회개의 기도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부족하지만 우리 이민교회로부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새로운 부흥의 물결이 시작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X